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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대만 탐조기-풀어서 보기2006/01/27
장용창




타이난 저어새를 품다
  

2006년 1월 15일
  드디어 대만으로 출발하는 아침이다. 자꾸 엇갈리는 일정과 인원 때문에 대만으로 출발하는 아침인데도 설레임보다는 불안이 앞선다. 1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10시 30분에 모여서 탑승수속을 밟고 대한항공 버스를 타고 원동항공이란 글자가 적힌 비행기 앞에 다다랐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서 내려 비행기를 타려는데 원동항공과 공항공사 간에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한참 실랑이를 했다. ‘그럼 그렇지. 순조로울 리가 없지. 이대로 못 가는 거 아냐.’ 혼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해결됐는지 타란다. 비행기에 올라타니 원동항공을 이용하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 듯 신문도 한자판이고 승무원도 모두 중국어를 한다. 그래도 꿋꿋하게 김영호 회원은 신문을 들고 와서는 그림책이라며 본다. 12시 출발예정이던 비행기는 12시 10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국제선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아 보이는 비행기였는데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지 좌석이 여기저기 텅텅 비어있었다. 카오슝까지 1시간 30분 걸릴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2시간가량 날아가야 한다고 한다. 기내식을 즐기다보면 한 시간이야 뚝딱 흘러가겠지. 기내식을 먹고 휴식을 즐기는 사이 대만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대만도 산들이 많은 듯 산들이 얼키설키 엉켜있었고 험하지만 수려해 보였다. 구름 위로 산들이 삐져나온 듯 산 주변으로 구름이 흩어져 있었다. 회원들은 눈으로 보기에 아까운지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댄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카오슝 공항에 도착했다. 대만 시간으로 1시 35분. 습하면서 더운 날씨가 우리 나라 초여름 날씨 같다.
   공항에는 왕선생과 젊은 황선생이 나와 있었다. 렌트카도 와있었다. 서로 반가움에 얼싸안고 서로 모르는 언어지만 어찌 지냈는지 인사하고 타이난으로 출발했다. 카오슝에서 타이난까지는 약 1시간 30분 걸린다고 한다. 옆으로 지나가는 버스가 volvo다.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난다. 타이난으로 가는 동안 저어새 상황을 물어보았다. 2005년 11월 21일에 939마리의 저어새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치쿠습지에 600여마리가 있고 쓰차오습지에 250여마리가 있다고 했다. 나도 제주도의 개체수를 말해주었다. 그러나 너무 비교된다. 900여마리하고 20여마리라. 차창 밖으로 chinese bulbul과 제비가 보인다. 전깃줄에 앉아있는 비둘기는 아마도 홍비둘기일 것이다. 약 30분을 달리니 타이난 이정표가 보인다. 30분정도 더 달리니 우리가 묵게 될 ‘시난촌’을 알리는 광고판이 보인다. 드디어 우리가 머무를 곳에 도착한 것이다. 2년 전과 달리 약간 낡고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에 들어갔는데 사람도 별로 없었다. 방은 3개를 빌었다. 부부방 2개와 나머지 회원을 위해 더불침대 2개인 방 1개. 그러나 방에 불만을 가진 회원이 방을 바꾸자고 한다. 5인용 방으로. 그러나 이미 짐들은 방안으로 들여놓은 상태라 그냥 쓰자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그 회원도 그냥 따르기로 했다. (그 회원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겠음.) 그러나 불만이 풀린 것은 아닌 듯.
  
사진 1. 숙소 테라스에서                   사진2. 저어새 전시관 전경

   숙소를 나와 처음 들른 곳은 이제야 막 개관한 저어새전시관.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저어새 깃발이 펄럭이고 저어새 조각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어새 하나를 위해 전시관을 만들고 저어새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수상가옥 형태로 지어졌는데 물 밖으로 나온 기둥이 흡사 물 밖으로 나온 저어새의 다리를 연상케 했다. 완성된 건물 옆에는 내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저어새 전시관 2관이 뼈대만 드러낸 채 조용히 살이 붙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니 반가운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어새 전시관을 디자인하고 영상을 찍었고 우리에게 전시내용에 대해 설명까지 해주신 Perry Chang씨였다. 왕선생의 친구 분이라고 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전시관의 전시내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전시관 내부로 들어서면 입구에 저어새 발자국을 뜬 모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입구를 지나면 전세계 저어새의 종 및 분포지를 나타내는 세계지도가 있다. 지도를 지나면 저어새의 일생을 나타내는 사진과 글이 큼직하게 붙어있고 전시관 가운데 저어새 박제가 사람들을 반겼다. 전시관을 찾는 학생이나 일반사람들을 위해 저어새에 관한 질문을 재미있고 알기 쉽게 그림을 곁들여 해 놓았으며 저어새에 대한 동영상을 마련하여 저어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었다. 몇 년전 보튤리즘으로 인해 죽었던 저어새를 박제로 만들어 그날을 기억하고 좀더 저어새에 관심을 보이도록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그 곳에는 저어새뿐만 아니라 저어새가 서식하는 습지의 생물들에 대한 자료도 전시하고 있어 자연이 서로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하나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투명유리를 통해 아래에 있는 물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면 자신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방명록이 놓여있다. 우리가 몇 안되는 관람객 중에 하나인 듯 방명록은 채 한 장도 넘겨지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새가좋은사람들’을 남기고 전시관을 빠져나갔다. 설명을 들은 후 기념촬영을 했다. 기념촬영을 마친 후 이동하려고 돌아가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또 전시관으로 왔다. 왕선생이 아는 사람들인 듯 먼저 인사를 했다. 야조회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야조회 회장님일 것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제주도에서 저어새를 보기 위해 왔다고 하니 신기한 듯 쳐다보다 제주도에도 저어새가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제주도 상황을 대충 말해주고 반가왔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타이난현의 현장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지사 정도. 타이난 현장은 저어새 보전을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는 듯했다. 저어새 전시관도 타이난 현장의 지원으로 세워졌으며 저어새가 가장 많이 월동하는 치쿠습지에 공업단지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삭발투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저어새 전시관에 종종 들려서 둘러본다고 했다. 정말로 부러웠다. 제주도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도지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점 파괴되고 개발되는 제주도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전시관을 나와서 탐조대로 향했다.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고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실시간 비디오 상영이 이루어졌고 저어새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약 100m떨어진 곳에 탐조대가 있었다. 치쿠 습지에서 저어새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매일 저어새를 촬영해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약 400여마리의 저어새가 깃털다듬기를 하고 있었다. 저어새 근처에는 Caspian Tern(붉은부리큰제비갈매기)가 무리를 지어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사진 찍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랑 사람들을 부지런히 찍고 있었는데 다른 회원들은 날아다니는 Caspian Tern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하늘로 향하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있어 노출이 안 나오는지 사진이 시원치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연신 눌러댔다. 저어새가 쉬고 있는 치쿠습지에 대해서 약간 서술하면, 동쪽으로는 강이 있고 서쪽으로는 바다가 있어 물이 섞이고 간만의 차가 생기는 곳이다. 2002년 11월 1일 저어새보호구역주요서식지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약 300에어커에 달한다고 했다. 2005년에 저어새는 9월 21일 3마리가 처음 도래하였다고 한다. 날이 저물어 숙소로 들어왔다.
  
사진 3. 저어새 관련 기념품들                사진4. 탐조대 전경

   저녁은 장선생이 산다고 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요리종류도 많고 푸짐한 근사한 저녁이었다. 그리고 몇몇사람들이 그리 원하던 고량주도 마셨다. 식사 중에 린선생과도 통화를 했고 다음날 보자고 했다. 또 한명의 반가운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서 보답으로 제주도에서 사 온 김과 홍삼차를 선물로 주었다. 타이난 분들이 다 가고 나서 숙소는 조용해지고 우리 일행만 남았다. 물 위에 세워진 숙소라 운치가 있었다.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첫날의 느낌이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내일은 새사진 찍고 모레는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자는 계획을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조용하고 물소리만 들렸다. 드디어 입이 심심한지 방에서 소주와 김치가 나왔다. 다들 한잔씩 기울이며 타이난에서의 하루가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2006년 1월 16일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6시 숙소 주인의 모닝콜에 다들 잠을 깨서 씻었다. 아침은 젊은 황선생이  샌드위치를 산다고 했다. 그러나 마른 빵을 술 마신 다음날 먹는다는 것은 고문이라면서 타이난분들이 오기 전에 컵라면을 훅딱 먹어치웠다. 아니나 다를까. 찐빵같은 것을 잔뜩 사고 왔는데 맛이 너무 느끼했다. 컵라면이 왜 이리 고마운지. 대충 아침을 때우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칙칙하고 싸늘하다. 얇게 입고 나왔다가는 당장 감기에 걸릴 듯하다. 해무가 껴서 하늘은 부옇다. 일단 차 3대에 나누어 타고 저어새를 찍기 위해 출발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며 부연 해무 사이로 굴양식장이 보였다. 굴 껍질을 길옆에 버리는 차도 보였다. 굴 수확하러 가는 배도 보였다. 겨울은 굴의 계절인 듯하다. 길옆으로 망그로브숲도 지나고 양어장도 지나고 저어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많이 굵게 내린다. 이런. 대만은 건기라던데 비가 오다니. 운이 이리도 안 좋은가. 한숨만 나왔다. 흐린 차창 밖으로 오리가 보였다. 그리고 비가 약간 그쳤다. 그럼 그렇지. 저어새가 보였다. 다리 정도의 수심에서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었다.차가 나타나자 몇 마리는 놀라서 나른다. 70여마리가 3무리로 나눠져 있었다. 젊은 황선생이 800mm 니콘 렌즈를 빌려주었다. 거리가 멀지만 렌즈를 믿고 마구 눌러댔다. 영호랑 아무 생각없이 사진 때문에 실랑이 하다 시끄럽다는 지적을 받고 찌그러졌다. 날씨가 흐리다보니 사진이 흐리고 별로였다. 저어새가 날아서 이동을 했다. 우리도 저어새를 찾아서 이동을 했다.
   두 번째 장소에서는 걸어서 촬영하러 갔다. 젋은 황선생이 삼각대며 렌즈를 들고 따라와 줘서 힘들이지 않고 저어새를 찍으러 갈 수 있었고 나는 컷도 몇 컷 찍었다. 여기에는 저어새 50여마리가 둑과 양어장 속에 있었다. 여기 저어새들은 약간 특이한 행동을 했다. 물 속을 꾹꾹 찍어보고 헤집어보기도 했다. 수심이 깊이서 그런지 먹이를 찾기 위해 물 속을 저을 때는 머리가 완전히 물 속으로 들어갔다. 왕선생의 차를 타고 저어새를 찍기 위해 저어새에 접근을 했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저어새들이 한 곳으로 몰려들더니 순간 날아갔다. 비가 많이 쏟아져 오늘 일정에 차질이 생길 듯하다. 일단 저어새가 날랐기 때문에 비를 피하기 위해 탐조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실시간 영상을 보고 있다. 얼마 없어 비가 그쳤다. 탐조대에는 간조가 되었는지 물이 확 빠져있었다. 저어새도 가깝고 햇빛도 잠깐씩 나왔다. 새 사진 찍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몇몇 회원들은 소금산으로 관광을 갔다. 다시 하늘이 어두워졌다. 사진은 찍는데 기분은 별로다. 거리가 가깝다고는 하지만 제주도에 비하면 정말 새발에 피다. 날씨도 안 따라주고. 나도 관광이나 갈걸. 일단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탐조대 속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찍고 마도요를 촬영하였다. 거리가 멀었지만 왕선생이 친절히 가르쳐주고 렌즈까지 장착해 주는데 고마워서 몇 컷 찍었다.
  
사진 5. 저어새 무리                        사진 6. 맹그로브 숲

   저어새를 좀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쩡원강 옆을 지나쳤다. 강이름은 많이 들어본 듯하다. 그런데 강이기 보다는 습지에 가깝다. 강물은 별로 없고 주변에 풀들이 많고 밭으로 이용되는 곳도 있었다. 지금 쓰촨습지로 가는 길이다. 쓰촨습지로 가는길에 공업단지 옆을 지나쳤다. 10년 전 모두 습지였던 곳을 매립해서 만든 공업단지라고 했다. 그 규모가 엄청나 습지로 남아있었으면 좀 더 많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을 듯싶다. 소금산을 보러갔던 일행과 공업단지 근처에서 만나서 같이 쓰촨습지로 출발했다. 길옆으로 쇠백로가 목을 빼고 서 있었다. 근데 우리 나라에 비해 목이 가늘고 날개짓도 빠른 것 같다. 오는 길에 길 옆으로 긴꼬리때까치, 덤불해오라기, 뒷부리장다리물떼새가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쓰촨습지에 도착했는데 저어새상황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거리가 너무 멀고 날씨가 흐려서 사진기는 꺼냈는데 누구하나 시원히 나서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없다. 왕선생의 라이카 렌즈가 나오자 조금씩 셔터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금산에 갔다온 일행이 먹을 거라면 뭔가를 건냈다. 맛은 밤과 콩을 섞어놓은 것 같고 모양은 마름열매이며 크기는 밤보다 크고 껍질은 단단했다. ‘린짜오’라는 식물의 열매였다. 이 식물은 타이난의 권티엔지역에 산재한 연못에 많이 자라는데 이 잎 위에 약 100여 마리쯤 되는 물꿩이 번식한다고 했다. 가는 곳마다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기념촬영이 있었고 다시 좀더 나온 장소를 찾아서 이동했다. 하얀 소금이 군데군데 있는 염전을 지나니 길이 질퍽해서 다시 길을 돌렸다. 그리고 근처에 소규모 고래박물관으로 향했다. 고래박물관에서 10m가 넘는 고래의 뼈도 구경하고 고래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도 관람하였다. 그리고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고래뼈가 공중에 매달려 있어서 전시공간을 넓게 확보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래가 사는 공간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몇몇 회원들은 밖에 날아다니는 Chinese Bulbul나 긴꼬리때까치 찍는데 더 신이 난 듯하다.
  배꼽시계가 울릴 때쯤 우리는 음식점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곳은 우육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타이난에서 요즘 인기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쇠고기를 얇게 썰어서 뜨거운 물에 넣고 휘휘 저어서 양념장에 찍어먹는 것이었다. 양념장도 된장에 생강을 넣고 몇몇 재료를 더 넣어서 만들었다. 흡사 우리 나라 샤브샤브처럼 보였다. 양념장에 생강을 넣어 쇠고기의 비린내를 없애는 듯 했다. 타이난 사람들은 생강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늘처럼 자주 먹고 양념의 재료로 사용하는 듯했다. 어제 저녁 먹은 요리에 독특한 향이 나던데 그것이 생강이었던 듯하다. 우리일행은 음식이 입에 맞는 듯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맛있다는 표현도 빼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저어새를 찾아 이동을 했다. 4차선 도로 옆 작은 습지에서 뒷부리장다리물떼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먹는다. 차 안에서 타이난에 대해 이것저것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지나치는 곳들은 200년전에는 내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갯펄이 되었고 이제는 양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쓰차오습지에 가는 도중에 작은 습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논병아리며 쇠물닭이 번식을 하고 있었다. 지금 1월에 말이다. 신기하다면 차를 세웠는데 풀 속에서 열대붉은해오라기가 경계를 하다가 천천히 도망가는 것이었다.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는 갑자기 어수선해지더니 카메라를 들고서 찍어대기 시작했다. 잠시 경계하며 풀 속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포로롱 근처 나무로 날아갔다. 덤불해오라기도 한 마리 나타났다. 다들 환호(마음속으로) 속에 사진을 찍어댔고 Chinese Bulbul이며 홍비둘기도 나타나서 그 작은 연못을 환상의 습지로 바꿔놓았다. 한참을 사진 찍고 나서 쓰차오습지를 향해 다시 차를 달렸다. 쓰차오습지에 도착하니 여전히 저어새는 저만치 있다. 날씨는 맑아져서 기분은 훨씬 좋아졌다. 정오를 넘기니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젊은 황선생이 먹어보라면서 팥빙수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왔다.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웠다. 그런데 맛을 장담할 수가 없으니. 다들 이리빼고 저리빼다 한명이 먹어보겠다며 숟가락을 집었다. 붉은색은 팥이요 하얀색은 순두부라. 시원하긴 한데 순두부는 미끌거리는 것이 비위가 상해서 못 먹겠다. 그러나 성의를 봐서 먹어야한다. 다들 꾸역꾸역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열심히 먹었다. 우리들 성의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검은머리흰따오기가 한 마리 나타나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다들 하늘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대만에는 약 100여마리의 검은머리흰따오기가 보인다고 했다. 그 중 한 마리라. 우리회원들 카메라가 아직 열도 받지 않았는데 검은머리흰따오기가 날아가버리고 다시 그곳은 정적에 잠겼다. 옆광이라 사진발도 좋지 않고해서 다시 이동하기로 했다.
    이동하는 곳은 타이난에서 벗어난 짜이라는 곳에 위치한 아오구습지였다. 약 1시간 가량 차로 이동해야하는 곳이었다. 아오구습지에 도착하자 습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있고 물 주변으로 갈대와 풀이 자라고 나무도 자라고 물고기도 물 속에서 떼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넓은 호수같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그 물 위에 댕기흰죽지, 붉은부리갈매기가 떼로 모여있었다. 갈매기떼들은 무슨 일인지 갑자기 하늘로 날랐다가는 물 위로 내려안곤했다. 다들 그 장면을 포착할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바람이 점점 차갑게 느껴진다. 가까이 장다리물떼새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듯 부지런히 먹이만 찾아먹는다. 그 중에 오스트랄리안 장다리물떼새 한 마리가 보였다. 뒷목만 검고 굵은 띠가 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관찰되지 않은 종이다. 노출이 점점 나오지 않게 되자 다들 철수할 준비를 했다. 이제 또 한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가야했다. 너무 늦은 저녁이 되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차를 타고 가면서 신호등을 보는데 초시계가 있어서 신호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었다. 차창 밖으로 해가 진다. 타이난에서의 하루가 또 가는 것이다. 어둠에 붙여 저녁먹는 곳에 도착했다. 왕선생과 장선생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했다. 약간 늦은 시간이라 모두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다들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렸다. 처음 나온 요리가 참게요리였다. 눈치, 채면 볼 것 없이 맛있다면서 허겁지겁 먹었다. 정말로 푸짐하게 요리들이 나온다. 먹다먹다 지쳐서 다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요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특별 요리가 나왔다. 저어새가 먹는 물고기로 찜을 한 것이었다. ‘우꼬’라고 하는 물고긴데 붕어처럼 생겼다. 여는 민물고기 맛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저어새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이었다. 푸짐한 식사에 감사함을 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치기도 하거니와 고량주 때문인지 밤새워 소주를 들이키겠다던 회원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서 뻗어버리고 술과는 무관한 회원들만 남아서 내일 계획도 짜고 김치에 소주도 들이켰다. 방아래 물소리만 여기가 타이난이란걸 알려주었다.

2006년 1월 17일
  6시 모닝콜에 6시 30분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고서 왕선생일행을 기다렸다. 여전히 아침은 해무가 끼고 습하며 쌀쌀했다. 테라스에 모여서 몇 명은 오늘 돌아볼 관광지를 찾고 있고 몇 명은 물고기에 과자부스러기를 주고 있으며 수상가옥에서의 아침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회원도 있었다. 왕선생일행이 도착하고 숙소에서 이동을 했다. 요즘 아침 날씨가 항상 이러냐는 질문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닌데 해무가 낀 것은 행운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해무 때문에 저어새가 경계를 덜하고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차를 타고서 다다른 곳은 용산궁이란 곳이다. 타이난에는 사원이 많이 눈에 띈다. 부처를 모신 사원이 아니라 특별한 신을 모신 사당같은 곳이었다. 마을이나 도심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데 이 근처는 아침이나 저녁에 시장이 서기도 하고 먹거리를 파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공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우리가 찾아간 용산궁이 특별한 이유는 유일하게 저어새 조각이 사원 들어가는 입구 대문 위에 있다는 것이다. 신기해서 다들 사진찍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사원 주변에는 아침시장이 서 있었다. 신선한 물고기를 비롯하여 과일이며 옷을 파는 곳도 있었다. 어제는 저어새 먹이가 되는 물고기를 먹었지만 여기서는 실제 저어새먹이가 되는 물고기를 볼 수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저어새라는 새를 모두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왕선생이 먹으라며 귤 비슷하게 생긴 과일을 주었다. 귤과 비슷하지만 신맛이 없는 것이 약간 심심하게 느껴졌다.

사진 7. 용산궁의 저어새                   사진 8. 저어새의 먹이

  용산궁을 나와 저어새를 보러가면서 보트선착장에서 관광보트가 있어 이 주변을 둘러보는 관광코스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사람이 많을 때만 운행된다고 했다. 2년전에 왔을 때 보트를 타고 가마우지를 보던 생각이 떠올랐다. 해무가 쉬 없어지지 않을 듯하다. 차 속에서 여기 양식장도 변해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30여년전에는 주로 물고기를 양식해서 주 소득원으로 삼았었는데 현재는 조개를 더 많이 양식한다고 한다. 가격이 역전되면서 양식패턴도 바뀌었다고 한다.
  저어새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린선생이 와 있었다. 반가움에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저어새 관련 CD도 선물로 준다. 그리고 밴딩한 저어새를 찍었다면서 보여줬는데 K38을 단 저어새였다. 3년전 어린새에게 밴딩한 저어새가 여기서 관찰된 것이다. K42도 보인다고 했다. 이런 정보들이 많이 모이면 저어새의 멸종을 막기 위해 큰 힘이 될 것이다. 서로 얘기하는 사이 저어새들이 점점 경계를 풀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강씨부자가 말썽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다시 경계를 하다가 뒤쪽으로 날아갔다. 한번 주의를 주고 조용히 기다렸다. 점점 가까워지자 셔터소리도 점점 커지고 빨라진다. 날씨가 영 시원치 않아서 그리 좋은 사진은 아니지만 최대로 가까운 거리였다. 얼마 없어 저어새가 또 날아가버리고 우리도 기념품을 사기 위해 탐조대로 이동을 했다. 저어새관련 기념품 파는 분이 벌써 와서 좌판을 벌리고 있었다. 다들 물건 고르는데 정신이 없었다. 대만 첫나들이인 회원들이 많아 여기저기 선물할 곳이 많은 모양이다. 한시간 넘게 선물을 사는 난리통에도 타이난분들은 옆에서 웃으며 기다려주셨다. 고맙습니다.
  
사진 9. 타이난에서 도움 주신 분들         사진 10. 기념품을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선물 사는 것이 끝나고 두 그룹, 새 촬영팀과 관광팀으로 나누어졌다. 글의 흐름상 새 촬영팀의 일정에 맞춰서 계속 써내려간다. 관광팀이 떠나고 우리는 2개의 탐조대를 오가면서 촬영을 했다. 탐조대는 3살짜리 꼬마에서부터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저어새에게 방해가 안되게 설계된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새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앞을 완전히 막았고 구멍을 뚫어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구멍도 여러 군데 각각 높이를 달리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나이에 관계없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새를 구경하다가 쉬라고 의자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뒷부분은 대나무를 이용해서 막아놓아 바람이나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탐조대에 들어가서 왜 이 곳이 저어새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인지를 들을 수 있었다. 탐조대에서 바라보면 멀리 둑이 보였다. 이 둑에는 2개의 수문이 있어 물이 천천히 들고 나기 때문에 저어새들이 먹이를 먹고 휴식을 취하는 데 좋다고 한다.
   이제 실실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으러갔다. 우리가 앉은 좌석 앞에 달력이 있었다. 음력 1월 1월이 다가오는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도 음력 1월 1일은 춘절이라고 해서 큰 명절 중에 하나라고 했다. 보통은 일주일 정도 쉬는 데 올해는 휴일이 앞뒤로 겹쳐서 열흘정도 명절 연휴가 된다고 했다. 우와. 열흘이라고. 크긴 큰 명절이구나. 우리가 점심을 먹는 식당에도 저어새 사진이 한편에 큼직하게 붙어있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던 다른 일행이 왕선생을 알아보고는 술잔을 기울이며 건배제의를 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저어새가 이 곳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촬영을 위해 이동하면서 장선생으로부터 양어장의 물 높이에 따라 고기의 맛이 달라지고 가격 차이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물높이가 낮으면 활동성이 많아져서 고기맛이 좋다고. 양어장이 시작될 초창기에는 물높이가 낮고 일정하여 고기맛도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격대가 높이 형성되면서 너나할 것 없이 양어장을 시작하였고 물이 부족하게 되어 물을 끌어오게 되고 이로 인해 물높이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기맛의 차이와 함께 가격 차이가 생겼다고. ‘팅산’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저어새가 30여마리정도 보였다. 팅산이란 곳은 예전에는 염전이었다고 한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간 곳은 ‘따탄’습지로 물닭과 쇠물닭이 많이 보였다. 여기 논병아리는 겨울깃을 하고 있었다. 어제는 번식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여기는 겨울이라니. 정말 신기하다. 이 곳에는 저어새가 없어서 다시 차를 돌렸는데 강을 따라 맹그로브나무들이 쭉 늘어서서 멋진 장면을 연출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맹그로브나무가 국가 차원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기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무참히 베어져 강가에 방치되어 있었다. 어디가나 안타까운 현실은 있는 법인가 보다.
   차가 갑자기 멈췄다. 장선생이 차창 밖으로 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갯펄에 하얀 새들이 떼로 몰려 있었다. 무언가 했더니 뒷부리장다리물떼새무리다. 수천마리는 되어 보임직한 새무리가 멀리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왕선생이 찍으러 가까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괜찮다고 했더니 그러면 나는 장면을 찍으라면서 조심조심 뒷부리장다리물떼새무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10분쯤 지났을까. 한 무리의 새가 하얗게 하늘을 뒤덮더니 다시 내려앉았다. 2번 정도 이런 장면이 연출되더니 그다음은 옆 쪽 개펄로 날아가 버렸다. 멋진 장면을 잡을 수 있어 기분은 좋았지만 왕선생님 다음부터 새를 날리시면 안됩니다.^^
   다시 탐조대로 돌아와 타이난 저어새보호구역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 2002년 10월 1일 습지보호지역으로 선포하면서 16명의 습지관리감독자들이 감시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어새의 생태뿐만아니라 전반적인 습지의 상태를 관찰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탐조대에서 직접 설명하는 서비스도 병행하고 있었다. 타이난에서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만도 3개가 있다. 앞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와도 저어새에게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탐조대와 저어새의 거리가 항상 300m 정도이기 때문에 휴식이나 채식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저어새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저어새가 월동하는 7개월동안에 약 30만명의 관광객들이 저어새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인터뷰가 끝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타이난 시로 향했다. 지금까지 식사는 타이난분들이 전부 사주셔서 오늘 제주도팀에서 사기로 했다. 결국 강희만 회원이 샀다.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저녁을 먹고 3월에 제주도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장선생과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와서 왕선생일행과 담소를 나눴다. 왕선생 여자친구와 다른 한분이 더 와 있었다. 인사를 하고 사진첩을 보면서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왕선생일행은 돌아가고 우리는 내일의 출발을 위해 짐을 꾸렸다.

2006년 1월 18일
   비행기 시간이 아침 8시라 새벽 4시 30분이 일어나서 5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왕선생, 젊은 황선생이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셨다. 끝까지 고맙다. 안개가 많이 꼈지만 일찍 출발한 것이라 걱정이 안 된다. 가로등 불빛이 휘황한 도로를 달려 타이난에 아듀를 고했다.
  아듀! 타이난, 다음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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