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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배경) 소설-그녀의 선택2009/08/31
장용창

새를 보러 다닌지 너무 오래 되어서 홈페이지에 올릴 만한 글도 사진도 없네요. 우리 모임의 성격과 아무 상관 없지만, 제가 쓴 글이라 "자유"게시판에 한번 올려 봅니다. 다 읽는 데 한 10분 정도 걸립니다.

소설: 그녀의 선택

2009년 8월 19일 장용창 (yongchangjang@hotmail.com)
010-9904-5224

1. 씨디 속에 담긴 노래

이건 내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8년 제주여자고등학교 교장에서 정년 퇴임한 아버지에게 퇴임 직후에 일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일본 손님은 아버지를 알고 찾아 온 게 아니라,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가 살고 있는 조천읍 선흘리로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그 일본 손님으로 인해 나도 며칠 전에야 알게 된, 할머니가 들려 준 이야기다. 할머니가 아무리 황소 고집이라지만 어떻게도 저렇게 팔십 평생 거짓말을 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 그지 없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인 것 같다. 일본 손님은 60년 전 할머니가 불렀던 노래가 담긴 씨디를 들고 왔으니, 자,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해방 되기 직전 1945년에 스무 살 남짓이었던 할머니는 이미 제주도 전체에서 유명한 무당이었다. 열일곱 살쯤 무병을 앓고 나서, 요새 말로 하자면 전업 무당으로 무당업을 개업하신 할머니의 신기가 워낙 뛰어나서 선흘리 곶자왈 깊은 숲 어귀에 있던 할머니의 신당으로 제주도의 전역에서 부자들도 찾아와 미래를 묻고 병을 고쳤다 한다.

1945년 여름에 할머니에게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으니, 한 명은 제주읍(제주시내)에서 소학교 선생을 한다는 말끔하게 생긴 청년이었고, 또 한 명은 한국말을 떠듬떠듬 하는 일본 청년이었다. 일본 청년이 군복을 입고 있어서 나 같으면 무서웠겠지만, 할머니는 든든한 빽이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도 두려움이란 건 아예 모르고 살았다 한다.

지금부터는 헤깔리니까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자. 할머니는 김만덕, 그 소학교 선생님은 김민우, 일본 군인은 히사시 신쇼라고 하자. 시옷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헤깔리게.

김만덕: 하이고, 신식교육 받은 선생님이 어떵허연 이디까지 오라신고? (아이고, 신식 교육 받은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꼬?)

무당들은 원래 아무한테나 반말 짓거리다.

김민우: 점 보레 온 거 아니난 존다니 맙써. (점 보러 온 거 아니니까 야단치지 마세요.)

할머니의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거슬렸나 보다.

김만덕: 숭 허는 말 아니메 조들지랑 말고. 게난, 점 볼 거 아니문, 이디 일본 사람이 글렌 허연 와신가? (흉 보는 말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럼, 점 볼 게 아니면, 여기 일본 사람이 가자고 해서 왔는가?)

계속 반말 짓거리다. 할머니 화이팅! 할머니는 다 알면서도 괜히 물어본다.

김민우: 안 골아줘도 잘 알암신게양. 곧건 들어봅서. 이 사름이 일본에서 나영 대학교 때 친구라났주게마씨. 국문학과 졸업허여신디 심방덜 노래 기록허였당 연구허염짼 마씨. 나신디 어디 노래 잘 허는 심방 아느냰 들어보쿠대 우리 어멍신디 들어봥 왔쑤다. 굿 허는 거 아니라부난 이상헐 거우다마는 노래 하나만 허여줍서. (안 가르쳐줘도 잘 아는군요. 말씀 드릴 테니 들어보세요. 이 사람이 일본에서 나하고 대학교 때 친구였거든요. 국문학과 졸업했는데, 무당들 노래를 기록했다가 연구한대요. 나한테 어디 노래 잘 하는 무당 아느냐고 물어보길래 우리 어머니한테 물어봐서 왔어요. 굿을 하는 게 아니라서 이상하겠지만, 노래 하나만 해주세요.)

신식 교육 받은 우리의 김민우 선생님, 남들이 천하다고 무시하는 무당에게도 꼬박 꼬박 존대말이다. 멋지다. 이 말을 듣고 할머니는 그 일본 사람 신쇼를 가만히 들여다봤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무당이 눈을 들어 가만히 들여다보면 움찔 하고 괜히 놀라는데, 이 사람은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 미소가 직업적으로 만들어 낸 작위적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 마음이 편안해서 그런 것인지 알아보려고 이번에는 노려보듯이 봤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계속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김만덕: 게건 경 헙주. (그렇거든 그리 하지요)

할머니가 너무 쉽게 대답을 해서 아마 둘 다 조금 놀랐나 보다. “게건 경 헙주”라는 말이 무당들이 펼치는 연극 중 대사로 아주 많이 등장하는 말이라는 걸 이 둘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할머니는 둘 앞에서 노래 하나를 부르고 그 일본 사람 신쇼는 그걸 녹음해서 가져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씨디에 담긴 노래는 그렇게 60년 전에 만들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 버리면 너무 재미 없으니까, 그럼 이제 신쇼가 어떻게 제주도에 와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는지 볼까? 말투 바뀌어도 놀라지들 말어!

2. 결7호 작전 (신쇼의 독백)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더니, 이 전쟁 통에 나는 생각이 점점 깊어만지고 있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 네가 죽고 내가 산다는 게 무엇일까? 나는 여기 제주로 배치되어 지금껏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저기 오끼나와에 배치된 이들은 몇 주 전 전투에서 거의 전멸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제 다음 차례는 여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음 차례는 나다. 이제 곧 죽으리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흥. 이것은 죽어가는 자들에 대한, 아무짝에도 없는 위로일 뿐이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건 우리 일본과 같은 파시즘 정권들이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죽음으로 내몰기 위해 지어낸 말일 뿐이다. 죽으면 이름이 남는다고?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는가.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자. 이곳에 끌려 오기 전 일본에서 무당들과 나누었던 대화는 가슴 설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과 나누던 대화는 얼마나 풍성했던가. 난 그들의 깊은 눈빛이 좋았다.

김민우는 언제쯤 답장을 줄까? 몇년전에 다닌다던 학교로 편지를 보내긴 했는데, 그 친구가 계속 그 학교에 다닌다는 보장이 없다. 그가 도와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그냥 막무가내로 나가서 동네 사람들 아무나 붙들고 물어나 볼까? 아니야. 나 혼자 나가면 이 동네 사람들은 날 적으로 볼지도 모르지. 나는 저들을 30년 넘게 지배해온 식민지 국가의 군인이니까.

3. 첫 만남

그러니까 히사시 신쇼라는 이 삐딱한 사람은 일본에서 국문학과를 졸업한 꿈같은 청춘의 엘리트 대학생이었다는 것이다. 캬, 이래야 소설이 좀 재미 있어지잖아?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됐냐고? 아, 앞에서 봤잖어. 김민우가 신쇼의 편지를 받고는 놀라서 신쇼의 부대로 찾아간 거지. 일본 군부대가 제주도에 있었냐고? 앞에서 얘기했잖아! 일본 애들이 태평양 전쟁에 패배할 것 같으니까 오끼나와랑 제주도에 군대 보내서 미군이 일본 본토를 치는 걸 막으려고 했던 거라고. 그러니까 해방 직전 1945년 봄부터 제주도에 한 7만명 쯤 되는 일본 군인이 있었어요. 아, 그 중에 한 명쯤은 이런 삐딱이 좌파 엘리트도 있을 만하잖아? 정말이냐고? 아 정말이라니까.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침 놓고 제왕절개하는 마지막 장면 기억하지? 그 수술하던 동굴이 제주도에 있는 건데, 그게 자연 동굴이 아니고, 이 일본 군인들이 어뢰 발사하려고 파놓은 인공동굴이예요. 아, 못 믿겠으면 제주도 가봐, 곳곳에 이런 인공동굴들이 쫙 깔렸으니까.

그럼 김민우가 어떻게 그 7만명 중에 신쇼를 찾을 수 있었냐고? 아, 7만명에도 부대 이름이 각각 있었겠지 뭐. 중요한 거 아니니까 대충 넘어가자, 따지지 말고. 그럼 어떻게 전투를 코 앞에 둔 군인이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냐고? 세상에 예외란 게 있잖아. 대충 이렇게 꾸며두자고.

신쇼는 자신의 좌파적 성향을 감추고 부대장에게 충성을 다하는 성실한 군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맡은 역할을 알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이 무자비한 전쟁에 끌려와 총을 들고 있지만,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전세계 무당들의 노래를 녹음하고, 글로 기록하고, 그 문화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당들의 문화가 사라질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태평양 전쟁에 끌려 나와, 연구할 기회를 잃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그 현실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는 전쟁 중에도 무당들을 만나고 그 노래를 기록하는 일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려면 첫째 자기 부대장에게 충성하고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신쇼의 부대는 조천읍 중산간에 있는 거문오름에 있었다. 중산간이 뭐냐고? 제주도에서만 쓰는 말인데, 해안 마을이 아니라 쬐끔 한라산 쪽으로 올라가 있는 목장 많은 동네들을 중산간이라고 불러요. 거문오름이 어디냐고? 아, 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 되어가지고 국제트레킹 하는 유명한 관광지 있잖애? 바로 거기여. 거기에 일본 군부대가 있었어요. 아, 못 믿으면 찾아가 보시든가.

거문오름에 있는 자신의 부대로 친구인 김민우가 찾아왔을 때 신쇼의 반가움과 놀라움은 그지 없었다. 물론 편지를 보내긴 했지만, 정말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일본에서도 파시즘 정권에 대한 피끓는 분노를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 중 하나였다. 신쇼는 부대장에게 부탁해서 당일짜리 특별외출을 허락 받았다. 아주 힘든 일이었지만, 조선에서 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이 지방의 유지가 직접 찾아와 부대장에게 부탁을 하자 특별히 허락될 수 있었다. 신쇼는 얼른 녹음기와 필기구 등을 챙겼다.

김민우는 신쇼와 함께 조천읍 선흘리로 향했다. 신쇼의 부대가 있는 거문오름에서 걸어서 한 시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고, 그곳은 제주도 무당들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와흘리 본향당과 바로 인접한 곳이었다. 신쇼는 기뻤다. 이런 곳이 자기 부대 바로 옆에 있다니.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너무 우연을 짜맞춘 것 아니냐고? 그런 것도 좀 있어야 재미가 있잖애?

4. 김만덕의 고민

신쇼 앞에서 노래를 불러 주고 신쇼와 김민우를 보내고 난 후 김만덕은 할머니께 여쭈었다. 여기서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가 아니라 무당인 만덕이 모시고 있는 신을 가리킨다. 왜 헤깔리게 그런 단어 쓰느냐고? 원래 무당들이나 무당 찾아가는 사람들이나 신을 할머니라고 불러요. 지들이 원래 그러는데, 하는 대로 따라주는 게 안 낫겠어? 신이 어째 여성이냐고? 아, 할아버지 신도 있으니까 너무 따지지 말자고. 무당의 원조인 바리데기도 여성이잖애.

김만덕의 눈에 어렴풋이 보였다. 신쇼는 어진 사람이었지만 곧 죽게 될 것 같았다. 할머니가 신쇼에게 잘해 주라고 했다. “그럼 김민우 선생은요? 그 사람은 그냥 신쇼 데려다 준 친구죠?” 어라, 그런데 할머니는 침묵이다. 제주도에서 신기가 제일 좋다는 만덕이었지만 할머니가 도와주지 않으면 말짱 황이다.

5. 노래

신쇼는 부대에서 휴식 시간이 날 때마다 테잎을 돌려 조용히 만덕의 노래를 들었다. 전쟁은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일본과 조선의 관계가 어찌 될지 모르니, 이 노래는 다시 얻기 힘든 기록일 수도 있었다. 고이고이 간직해야 한다. 하지만, 신쇼는 학문 연구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기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문학 연구자는 우선 문학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당의 노래를 연구하는 사람은 우선 무당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노래를 듣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신쇼는 객관적인 관점의 과학이라는 서양식 방법론에 대해 벌써부터 어떤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연구자의 철학과 가치관이 배제된 객관적인 학문이란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며,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쇼는 그래서 노래를 열심히 들었다. 신에게 부르는 노래라고 했는데, 꼭 아기를 재우는 자장가처럼 들렸다. 눈을 감는다.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내면의 아이가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것 같아. 긴장이 풀린다. 기쁨인지 그리움인지 헤깔리는 울음이 나온다. 따라 불러본다. 노래엔 가사가 없었다! 가사가 없어서 실망 되느냐고 김민우는 물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어 연구에는 도움이 안될지라도 문학과 예술,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는 충분히 가치 있는 자료였다. “어, 어어허으 어허, 어어허...”노래는 줄곧 “어어허”만 반복했지만, 멜로디는 꿈결 같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고향 일본에 계신 어머니가 아닌 만덕의 얼굴만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신쇼는 어느날 밤 부대를 몰래 빠져 나왔다. 이 전쟁통에 탈영병은 총살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미군이 비행기를 몰고 이곳 제주도로 온다면 그 자신도, 만덕도, 김민우도 죽을지도 모른다고 신쇼는 생각했다. 그러니 죽기 전에 그 노래를 한 번 더 듣는 것, 그녀의 손을 잡고 체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녹음기도, 총도 없이 조용히 선흘리를 찾아갔다. “만덕! 만덕!” 조선 말로 떠듬거리며 신쇼는 신당 앞 마당에서 만덕을 조용히 불렀다. 만덕이 문을 열고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끄덕여 인사한다. 그 늦은 밤에 만덕은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신쇼가 오는 것을 천리안으로 다 보고 있었다. 신쇼의 고민도, 생각도, 감정도, 모두 보고 있었다. 만덕은 신쇼의 손을 잡고 조용히 그를 안았다. 신쇼는 아이가 엄마에게 안기듯 그 치마자락에 폭 안겼다. 긴장이 풀렸다.

6. 양철진

신쇼는 새벽이 오기 한참 전에 부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양철진이 만덕을 찾아왔다. 양철진은 만덕과 같이 선흘리에서 태어난 친구였다. 만덕보다 한 살 어리지만 같이 어울려 놀았다. 무병을 앓기 전에도 만덕은 어른스러워 양철진은 나이로 보나 생각하는 걸로 보나 만덕보다 어렸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높다는 그 어리석은 전통에 충실하여 만덕과 늘 반말을 하며 살았다.

어른들은 무당을 경멸하면서도 무서워했다. 완전히 다른 인종의 사람으로 취급했다. 무당과 결혼을 하면 그 자손이 반드시 그 신을 물려받아 무당 일을 해야 한다. 또한 무당은 아무리 신기가 뛰어나고 일을 열심히 해도 이상한 운명적 힘에 끌려 돈은 절대로 많이 벌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자녀가 무당과 결혼하게 될까봐 조심에 조심을 했다. 무당이 밥을 굶는 일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철진은 어릴 때 같이 놀던 기억에 집착하며 만덕이 자신의 친구일 뿐이라고 우겨댔다.

양철진은 늘 만덕의 주변을 맴돌았기 때문에 신쇼가 김민우와 왔을 때도, 신쇼가 어제밤에 혼자 만덕을 찾아왔을 때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철진: 만덕아, 너 꼭 경 해야 되커냐? (너 꼭 그렇게 해야 되겠니?)

만덕이 지난 밤 신쇼를 받아들인 걸 두고 하는 소리다. 만덕은 무슨 소린지 알았지만 아무 대답을 안 했다.

철진: 무사 대답 안 허맨? 일본놈이 우리 나라 뺏아먹은 거 몰람시냐? 아맹 무당이랜 허주만 남자가 경도 어선 쪽바리 일본놈허고 붙어 먹엄시냐? (왜 대답 안 하니? 일본놈이 우리 나라 빼앗아 먹은 걸 모르니? 아무리 무당이라고 하지만 남자가 그렇게도 없어서 쪽바리 일본놈하고 붙어 먹는 거니?)

철진은 착한 친구였지만 인생의 비밀은 몰랐다. 운명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 착한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이 친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철진: 야!

만덕의 침묵에 철진이 더더욱 분노를 키워 고함을 질렀다.

철진: 혼 대 맞아사 정신 촐령 대답허잰 햄나?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려 대답할래?)

만덕은 철진을 불쌍한 눈길로 쳐다 봤다.

만덕: 철진아. 때리고정 허문 때려도 돼. 경헌디 그거 알암시냐? 무당 때리문 천벌 받앙 오래 못 산다이. (나 때리고 싶으면 때려도 돼. 그런데 그거 알아? 무당을 때리면 천벌 받아서 오래 못 살아.)

철진: 에이 씨, 일본놈허고 붙어 먹은 너나 천벌 받으라.

철진은 난간에 앉아 있던 만덕을 뒤로 밀치고는 달아났다. 종이를 바른 문에 등을 부딪쳤지만, 만덕이 다치지는 않았다. 애정을 폭력으로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철진이 불쌍했다. 게다가 이렇게 무당을 떠밀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만덕은 옷을 고쳐 입고 당에 들어가 철진을 용서해 달라고 할머니에게 빌었다.

7. 신쇼의 고민

만덕과 꿈같은 밤을 보내고 난 후 신쇼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만 같았다. 작업을 하는 중에도 신쇼는 녹음해온 만덕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어어허 어야, 어어허으~” 같은 부대에서 그나마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 카시와기에게도 녹음한 것을 들려주기는 했지만, 밤에 다녀온 것은 말하지 않았다. 만덕과 밤을 보낸 것도 기적 같은 일이지만, 밤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온 것도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는 당장 사형에 처해질지도 모른다.

신쇼의 마음이 마냥 기쁘고 충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신쇼는 이제 사랑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만덕을 사랑하는 걸까? 만덕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사랑하는 게 아니라면 왜 나를 받아주었을까? 내가 만덕을 사랑한다면 그건 무슨 뜻일까? 만주에서는 조선 여자들을 정신대로 끌고 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겉으로 보자면 나는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군인이고, 만덕은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의 백성이니, 어찌 보면 침략자가 침략당한 자에게 만행을 저지른 거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총도 안 들고 갔었고, 만덕은 아무 말 없이 날 받아주었다. 그렇다. 진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그 내면에 있다. 진리는 만덕의 마음 속에 있다. 그녀가 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만덕은 그날 밤 나를 보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일본으로 가도 되는 걸까? 하, 내가 살아서 일본으로 갈지는 아직 모르지! 미군이 언제 이 제주도에 폭탄을 떨어뜨릴지 모르니. 그래 만덕이나 나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 서로 만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하여간,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지? 만일 전쟁이 끝나서 내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간다면? 만덕은 그냥 전쟁터에서 있었던 로맨틱한 기억으로, 친구들에게 자랑해댈 사건 속에 두어야 하나? 그래서 다른 놈들 하는 것처럼, “내가 말이야, 조선 땅에서 처녀를 따먹었는데”, 하면서 떠벌이며 다녀야 하나?

그래, 만덕이랑 결혼하자.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면 일본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허락을 얻어 정식으로 만덕과 결혼하자. 만덕을 데리러 다시 제주도로 오자.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라면 행동에 있어서도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나를 받아들여준 만덕을 그냥 이야기 거리로 두어서는 안된다.

8. 1945년 8월 15일, 신쇼

거문오름 군부대 막사가 며칠 전부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병사들은 대부분 이 지겨운 전쟁이 끝난 것에 안도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에 기쁜 것이 역력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은 기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조심에 조심을 다했다. 전쟁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천황의 패배라는 상처를 깊이 가지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 누가 함부로 기쁜 내색을 할 수 있겠는가?

신쇼의 고민도 깊어져갔다. 아마도 이제 곧 일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전쟁은 끝나고, 이제 조선은 일본의 지배에서 미국 등 연합군의 지배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럼 만덕은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이제라도 빨리 만덕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상황이 나아지는 대로 돌아와 만덕을 일본으로 데리고 가서 결혼을 할 것이라고 청혼을 해야 한다. 신쇼에게는 이 마음밖에 없었다.

신쇼는 김민우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문오름의 진지 구축 작업을 위해 일하고 있었던 제주도 출신 인부들 중 전부터 보아왔던 사람에게 이번에는 돈을 조금 더 주어 김민우에게 편지를 전해주도록 부탁했다.

드디어 8월 15일, 천황이 전쟁 항복 선언을 하던 날 아침 김민우가 부대로 찾아왔다. 정말 경황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경황없는 틈을 타, 부대장에게 부탁을 해서 외출을 나왔다. 부대장은 오히려 걱정하는 눈치였다. “조심하게. 이제 조선은 일본의 땅이 아니야.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만덕을 보고 싶은 신쇼에게 이런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곳 지방의 유지인 김민우가 옆에 있어서 든든해 보였다.

9. 1945년 8월 15일, 김만덕

김만덕은 할머니와 대화를 계속 했다. 아, 이놈의 운명이란 이렇게 알 수 없고 복잡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려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김만덕을 운명까지 바꿀 수 있는 위대한 무당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만덕이 모시고 있는 신, 할머니 신마저 신쇼가 죽게 된다고, 어쩔 수 없다고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김만덕이 굿을 통해 죽을 사람의 운명을 바꾼 게 아니었다. 그들은 병에 걸리지만 김만덕에게 찾아와 죽지 않을 운명이었다. 김만덕은 자기도 바로 그런 운명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작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칠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그 절망감과 분노와 슬픔을 감내할 수 없었다.

“할머니,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무당이라는 제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뭡니까?”

“위로!”

“예?”

“위로밖에 없다. 살 사람에겐 잘 살라고 위로하고, 죽을 사람에겐 죽어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 죽은 사람에겐 저승으로 고이 잘 가라고 위로하는 것. 니가 할 일은 그것밖에 없다.”

김만덕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지을 즈음, 천리안으로 본 것처럼 신쇼가 김민우와 함께 나타났다. 김민우는 신쇼가 혼자 밤에 다녀간 것을 모른다. 만덕은 이제 떠날 신쇼를 위해 제를 지낼 터이니 김민우는 한참 동안 나가 있으라고 일렀다. 김민우나 신쇼는 그 떠난다는 것을 당연히 일본으로 떠나는 것으로 여겼다. 만덕과 신쇼는 신당에서 둘만 남아 대화를 나누었다. 신쇼가 들뜬 마음으로 일본에 갔다가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했다. 결혼하자는 말도 했다. 만덕은 그냥 눈을 마주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요. 그리 하지요. 그리고 둘은 다시 사랑을 나누었다. 할머니가 흐뭇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신쇼는 기쁜 마음으로 신당을 나섰다. 김민우를 불러 만덕에게 이별을 고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갑자기 신당 건물 뒷마당에 숨어 있던 양철진이 가지치기용 손도끼로 신쇼를 내리쳤다. “쪽바리 놈 자식. 죽어라.” 양철진의 목소리와 신쇼의 비명 소리를 듣고 만덕이 문을 열고 내다보고는 기절해 버렸다. 그 당찬 무당 김만덕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비명 소리를 듣고 김민우가 달려 오는 것을 보고는 양철진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김민우가 양철진을 좇아갔다. 팽나무 정자가 있는 오거리까지 달려갔을 때 어디선가 고삐 풀린 커다란 미친 황소가 나타나 양철진을 들이받았다. 쇠뿔이 양철진의 배를 뚫어 양철진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10. 그러고 나서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됐냐고? 그거야 내 생각하기 나름이지. 하이고, 이 사람이 지금, 소설에 너무 몰입해서 이게 소설이란 걸 다 잊었구만. 이거 다 내가 지어낸 얘기걸랑. 하여간 어떻게 됐냐고? 아, 김민우가 경찰에 알리고 부대로 찾아가서 부대장에게 얘기를 했지. 그런데 부대장은 하도 경황이 없어서 알았다고만 하고 신쇼의 시체 처리도 김민우에게 그냥 맡겨 버린 거야. 7만명이나 되는 일본 군인들은 며칠 후에 전부 떠나 버리고, 김민우는 만덕이랑 같이 신쇼를 장례 지내고 선흘리 근처에 묻었지.

신쇼가 녹음했던 테잎은 신쇼의 친구 카시와기가 일본으로 같이 가져 간거야. 카시와기는 그 테잎을 가보로 간직하면서 아들에게 물려준 거고. 그 아들, 그러니까 1945년 종전 이후에 태어난 아들이니까 2008년이면 60살쯤 되었겠지? 그 아들은 그 테잎에서 들리는 노래를 다른 테잎이랑 씨디에 녹음을 해서 평생을 듣고 살았다는 거야. “어 어허허 어흐. 어허허~”하고 흥얼거리면서 말이지. 뭐 자장가로 좋았대나 뭐래나. 그러고는 자기가 정년 퇴직을 하자, 그 노래의 주인공을 만나봐야겠다 생각하고는 그 주소로 찾아온 거지. 그 주소에 이제 80이 훨씬 넘은 그 노래의 주인공이 아직도 살고 있을 줄은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말이지.

그럼 김민우랑 김만덕은 어떻게 되었냐고? 이렇게 쓰면 너무 황당할지 모르겠지만, 둘이 결혼을 했어요. 물론 김민우 쪽 집안에선 반대가 심했지. 제주도 유지였으니까 어디 그 천민 중에서도 천민인 무당하고 결혼을 하겠냐 말이야. 그런데 김민우도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 친구인 신쇼가 죽어가면서 만덕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더래. 그래서 만덕이랑 결혼했지. 사실은 김민우도 만덕을 보고 첫 눈에 반했는데, 차마 무당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못하고 있었던 거라. 그런데 친구의 죽음을 보고는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거지. 그런데 만덕이 참 대단해. 신쇼랑 두 번이나 같이 잔 얘기를 끝까지 김민우에게 안 한 거라. 김민우랑 결혼한지 열달이 채 되기 전에 아들을 낳았는데, 뭐 팔삭동이라고 박박 우긴 거지. 김민우네 부모는 김민우가 속도위반을 해서 결혼을 서두른 걸로 이해했고.

그리고 결혼해서 몇 년 동안 김민우네 집이 있는 제주시 근처에서 살았지. 그 동안 4.3사건 벌어져, 6.25 전쟁 일어나, 참 엄청난 사건들 겪으면서도 잘 버텨낸 거예요. 사실, 제주시로 시집을 간 게 다행이었지. 왜냐하면 선흘리 사람들 그 난리통에 빨갱이로 몰려서 많이들 죽었거든. 그렇게 난리 전쟁이 지나가자 만덕이는 고향이 그립다고 다시 조천읍 선흘리 골짜기로 와서는, 요새 말로 치면 주말 부부라는 걸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 그러니까 신쇼의 아들이 커서 나중에 제주여고 교장까지 됐다는 거지. 말이 좀 되는 것 같니?

할머니 김만덕은 자기 아들이 아버지인 김민우의 자식이 아니라 일본인 신쇼의 아들이란 걸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려고 했었나봐. 그러다가 일본에서 손님 찾아와서 옛날에 자기가 불렀던 노래를 들려주니까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버지한테 다 들려주신 거야. 그것 참,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예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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